오를레앙 허의 서울문화투데이 음악컬럼 5

by 허성우 posted Oct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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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하는데 있을 것이다. 플라톤의 인식론적 철학에서 상위의 이데아는 귀족적이며 정적이다. 인간 최상의 삶의 질은 변화가 잦은 삶이 아니라 편안하고 정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뉴턴이 말하는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세계의 법칙의 핵심은 변화와 연장(extension)이다. 그가 바라본 자연의 섭리는 이와같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데 있었다.

전후세대의 유럽의 젊은이들은 선동주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허무주의, 행동의 공허함속에 지쳐있었다. 탈출세주의, 낭만적, 반전통주의, 동방적 신비주의에 매료된 프랑스 보헤미안적 지식인이 쏟아지던 이 시기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기성정치에 회의하고 기존의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는 탈권위의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음악이 비밥으로 대표되는 모던 재즈였다. 비밥은 셀로니우스 몽크, 찰리파커, 디지길레스피가 주도하던 뉴욕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 재즈클럽에서 태어났지만 바다건너 리브고시 비트족의 상징적인 음악이었다. 원 앤 쓰리의 온비트의 전통적 박자개념을 탈피해 투 앤 포의 불안한 듯 떠다니는 강력한 업템포의 어프 비트( off beat) 의 음악은 그들의 아르스 노바였던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번이미지에 가장 부합하는 장르 하나를 고르라면 재즈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음악도 어느 한 파트에 집중되는 음악도 아닌 서로간의 조화와 균형을 이끌어 내는 음악, 재즈가 가진 강력한 매력가운데 하나인 조화의 힘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수년전만 하더라도 상시적으로 열리는 이렇다할 재즈페스티벌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이제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받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나 인천국제 재즈페스티벌등질적으로 우수하며 성공한 페스티벌이 있다.

신종플루는 가혹해서 전국의 축제를 쓸어버리는 쓰나미와도 같았으나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어김없이 이들 축제는 개최되었고 개최될 예정이다.

다행히 올해에는 서울에서도 국제 재즈페스티벌이 개최되어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메인콘서트에 앞서 재즈음악을 시민들에게 인식시키려는 각종 부대행사들에 눈길이 갔다.아마추어 재즈밴드의 공연이라던지 페이스 페인팅을 한다던지 하는 것이다. 주변을 오가는 시내버스에서도 행사를 알리는 플랜카드가 붙어있어 관악구는 온통 재즈축제의 장이었다.

국내를 대표하는 에이스급 재즈뮤지션과 외국인 뮤지션이 함께한 재즈난장에서 성시경과 유열같은 인기연예인이 재즈뮤지션처럼 등장하고 있었다.

이들의 출연이 원칙적으로 옳진 않지만 긍정할 수 있는 것이 관객을 모으는 피리부는 아저씨 역할은 해줄 수 있고 오늘날 재즈음악의 다른 관점에서의 정의는 그 누구라도 스스로의 음악을 재즈로 부르고 싶다면 그것은 재즈음악일 수 있다라고 하는 데 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즈총론 저 마크 그리드리-

재즈는 이제 청년지식인들이 공유했던 그들만의 음악이 아니라 서구 선진사회의 그들의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것과 어우러짐이 있고 우리들이 참여하고 즐기는 우리들의 음악이다. 다만 이제 도시를 중심으로 번져가는 재즈축제의 장이 전시행정의 또 하나의 실험장으로 일회성으로 끝나버리는 비극은 없었으면 하고 음악의 내적 속성인 소통과 조화 남을 위한 배려가 선행되고 또한 다양한 문화생활에 참여하는 아름다운 통로가 되어 주길 바란다.